기본을 갖추기: 피아노 하농을 연습하며 깨달은 기본의 중요성
나는 5~6살 때 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 곡을 한번 연습할 때마다 연필로 슥삭슥삭 진도카드의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리곤 했다.
피아노를 똥땅 거리는게 재밌었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피아노 연습책은 하농이었다.
하농은 피아노를 시작한 수련자라면 무조건 거쳐가야 하는 필수 퀘스트 같은 60 연습곡이다. 손가락을 풀어주고 단련시키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연습곡들이 단조롭기 짝이 없다.
지루한 하농을 연습할 때면 일곱살의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가끔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하농 연습곡의 진도카드의 동그라미를 연습한 것보다 2-3개 더 그리기도 했다.
원래 안 좋아했던 하농을 훨씬 더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8살 때 집에서 하농을 똥땅똥땅 치는데, 사실 하농은 듣기가 좋지 않다. 부르크뮐러나 피아노 소곡집 같이 아름다운 음악곡이기 보다는 철저히 연습곡과 테크닉 위주이다. 그래서 나의 관객분들 (아파트 이웃주민분들)의 귀에 절대 감미롭지는 않았을 꺼다. 더운 여름날 열어놓은 창문으로 누군가가 크게 소리질렀다, "와, 진짜 못 친다!"
목소리가 딱 봐도 우리집 두층 윗집에 사는 초3 오빠였다. 가끔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었는데... 이럴수가. 어린 내게는 너무나도 상처였다. '내가 부르크뮐러의 흥미로운 곡을 치고 있었다면 절대 내가 못 친다는 소리 못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하농을 더 미워하게 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치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만두었지만,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피아노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다.
나의 피아노 이야기를 들으신 음악 교수님은 하농을 1번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셧다. (오마이갓)
교수님께 털어놓고 싶었다. 나 하농 싫다!! 하농 재미없다!!! 나는 쇼팽이나 모짜르트 연습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약 7년간 피아노를 아예 배우지 않았고, 내 주제를 알았기에, 교수님의 의견에 수긍했다. 일주일 마다 하농 곡 4개를 연습하고 다른 연주곡도 하나씩 같이 연습하기로 했다.
하농은 재미없고 안 좋은 기억만 떠올리게 하는 연습책이라고 원래 생각했지만,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로 하고 매주 하농을 연습하면서, 어렸을 때는 몰랐던 하농의 가치를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일단 하농이 멜로디가 단조롭기는 해도,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기본을 다지는 데는 정말 최고의 연습곡들이다. 손가락의 힘도 길러주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4,5번째 손가락들을 중점으로 테크닉을 길러준다. 하농을 몇번 연습하고 나면 팔 근육이 더 단단해진게 느껴진다.
또한, 어렸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농을 연습하다 보니, 하농이 절대로 쉽지 않은 곡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피드를 올리면 올릴수록 피아노 건반을 정확히 치는게 더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모짜르트나 쇼팽 곡들 중 빠르게 연주해야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하농을 연습함으로써 대비할 수 있다.
이제는 하농을 칠 때마다 즐겁고 감사하다. 하농 곡을 연습을 한번 두번 더 할 때마다 내 손가락이 풀어지고 강해지며 내가 더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고 하농의 진가를 발견하면서, 어떤 일을 하던 먼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기본을 다지는 일은 진부해 보이기도 하고,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내가 하농을 싫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관문을 넘어서야만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의 진정한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농을 연습한다.